1화 해후는 갑자기

[무르]

……실례. 실례합니다, 그쪽의 귀공자.

지나갈게요.

 

[???]

이런, 실례……

…………!

혹시 당신은 그 위대한……

 

[무르]

쉿.

별로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.

 

[???]

미안합니다.

아아, 꿈만 같아요……

전설의 위인과 만나다니.

 

[무르]

영광은 눈 깜짝할 새 과거의 것이 되죠.

지금은 빈털터리 학자입니다.

그럼 이만.

 

[???]

잠시만요, 무…… 천하의 재인(才人)이시여.

남들 앞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당신이 오늘 밤은 어떠한 용무로?

 

[무르]

후원자 탐색입니다.

요즘은 전화(戰火)가 다가와서인지 안정적인 부자가 없어서.

 

[???]

설마.

당신의 재능에 서쪽의 왕가 분들은 재산을 아끼지 않겠지요.

 

[무르]

그게 아무래도 요즘 너무 쩨쩨해서.

왕좌에 앉은 엉덩이가 바뀐 탓인가.

그나저나 사파이어 성의 영애를 아십니까?

 

[???]

사파이어 성의 영애……?

 

[무르]

네. 지금은 왕가보다 부자라는 소문의 대귀족이 사랑하는 따님을 만나러 왔습니다.

듣자 하니 뛰어난 음악가라던데.

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예술가 아가씨는 분명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겠지요.

 

[???]

재밌는 말씀을 하시는군요.

어째서죠?

 

[무르]

예술가란, 자극을 사랑하는 자니까요.

저 밤하늘을 봐주세요.

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극적인 건,

저 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.

하지만 절대 손이 닿지 않아……

 

[???]

……손이 닿지 않아……

 

[무르]

그에 반해, 저에게는 손이 닿죠.

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자극적인 남자.

여하튼 파멸과 등을 맞대고 있으니까요.

예술가 아가씨께서는 저에게 흥분하시겠지요.

그러지 않아도 좋아요.

말타기 놀이의 말 역할이라도 좋습니다.

어떻게 해서든 연구자금이 필요하거든요.

그걸 위해서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에게 무릎을 꿇고 구두 끝에 키스하겠어요.

 

[???]

위대하신 분, 마음은 충분히 알았습니다.

하지만, 대현자라 불렸던 당신이라도 틀릴 때가 있군요.

 

[무르]

무슨 뜻이죠?

 

[???]

분명 연구로 바빠서 바깥세상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신 거겠죠.

사파이어 성의 대귀족의 아이는 외동딸이 아니라 외동아들.

이름은 러스티카 페르치.

 

[러스티카]

부디 기억해주시길.

이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자극적인, 위대한 지혜인이여……

이런……

부디 한 번만.

작은 소리로 이름을 부르게 해 주세요.

무르 하트 공.

당신과 만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.

 

[무르]

당신이 러스티카……

 

[러스티카]

네.

 

[무르]

…………

아름다운 귀공자, 걱정 마시길.

나는 마법사.

당신이 원하는 대로 여자의 몸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. 당신의 취향대로요.

 

[러스티카]

여기서만의 이야기입니다만, 사실은 저도 마법사입니다.

그리고, 저에게는 약혼자가 있지요.

 

[무르]

내연관계여도 상관없습니다만.

말 쪽이 좋으신가요?

 

[러스티카]

아……

마침 그녀가 이쪽으로 오네요.

소개하겠습니다.

이쪽이 제 미래의 신부입니다.

그녀의 이름은……