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이벤트 스토리 21/천공의 연회에 봄을 불러들여

천공의 연회에 봄을 불러들여 4화

by camirin 2021. 5. 1.

빛이 사라진 후, 그곳에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.

대신 남아있던 것은, 깊은 색감의 낡은 나무껍질이었다.

 

[미틸]

헤, 헬레나 양은 대체 어디에……

설마 마법으로 사라져 버린 건가요?

 

[러스티카]

아니.

그녀는 여기에 없었어.

아마 변했던 그때부터……

 

[아버지]

그건…… 무슨……

 

[샤일록]

지금까지 저희가 보고 있던 건 헬레나가 아니라 정령인 페치였던 거겠죠.

 

[어머니]

페치……?

 

[샤일록]

조금 전까지 짐승처럼 날뛰었던 헬레나 말입니다.

정체는 신기한 힘으로 헬레나의 환영을 걸치고 있던 이 낡은 나무껍질이지만요.

 

[네로]

봐, 환영이 풀린 덕에 내 상처도 사라졌어.

아까 깨진 유리도 멀쩡하고.

 

[아키라]

(그래서 아프지 않았던 거구나……)

 

[샤일록]

드물게 정령이나 요정이 '페치'라고 불리는 이런 대역을 남기고 인간이나 마법사의 아이를 납치하는 일이 있습니다.

 

[스노우]

음. 아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귀여워하거나 하인으로 부리거나, 이유는 다양하지만 말이네.

 

[아버지]

그럴 수가……!

그럼, 헬레나는 정령에게 납치당했다는 건가요!?

 

[어머니]

결국 그 아이는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다니……

아아, 이런 일이……

 

부모의 비통한 한탄에 모두가 괴로운 표정을 띠었다.

 

[루틸·미틸]

…………

 

말을 고르고 있을 때, 루틸이 헬레나의 부모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 손을 잡았다.

 

[루틸]

헬레나의 아버지, 어머니.

저희가 꼭 헬레나를 찾아올게요.

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.

 

[어머니]

마법사님……

 

[카인]

그래. 한시라도 빨리 찾아서 당신들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.

 

[미틸]

두 분은 헬레나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주세요.

혹시라도 배가 고플지도 모르니까요!

 

미틸과 카인이 헬레나의 부모님께 따뜻한 말을 건넸다.

스노우는 샤일록에게 받은 나무껍질을 들고 마을에서 보이는 유달리 높은 산을 가리켰다.

 

[스노우]

나무껍질이 남긴 마력의 흔적을 조사했네.

아마 정령은 저 산에 있을 게야.

헬레나도 같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.

 

[어머니]

정말인가요……!?

 

모두에게 눈짓하고, 고개를 끄덕였다.

헬레나의 부모는 조금 진정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.

 

[아버지]

감사합니다.

부디,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……!


[네로]

잡혀간 여자아이가 있을만한 곳은 이 근처인가.

그런데 구름이 굉장하네……

 

잠시 하늘을 날아, 스노우가 가리킨 산에 도착했다.

네로의 빗자루에 올라타 하늘에서 산을 내려다보니 산 꼭대기 부근에 두툼한 구름이 덮여있었다.

공기도 희미하게 느껴질 만큼 표고[각주:1]가 높고 인간이 가볍게 오를만한 장소로는 보이지 않았다.

 

[아키라]

여기서는 구름이 방해돼서 산꼭대기 상황이 보이지 않네요……

 

[카인]

그렇네. 마법으로 조금 잘 보이게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……

 

[샤일록]

관두는 게 좋아요.

정령의 거처를 경솔하게 어지럽히면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.

경우에 따라선, 구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.

 

[러스티카]

그렇네.

적어도 떨어지지 않도록, 되도록 붙어서 날까.

빗속에서 같은 우산을 쓰고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.

 

[클로에]

정말. 자주 미아가 되는 러스티카가 제일 걱정이야.

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.

 

[러스티카]

후후. 고마워, 클로에.

 

[미틸]

저기, 형님.

형님 옆을 날아도 될까요?

여기서 미아가 되는 건 무서워요……

 

[루틸]

물론이지!

같이 날까, 미틸.

 

누구도 떨어지지 않도록 가까이 붙었다.

나도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네로의 옷을 붙잡았다.

 

[카인]

그럼 갈까.

 

카인과 샤일록이 선두에 서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, 

우리도 떨어지지 않도록 뒤를 따랐다.


[클로에]

와앗! 깜짝이야……

방금 그건 천둥인가?

바람도 강해서 기후가 불안정하네.

 

[러스티카]

그렇네. 그래도 신기하다.

이렇게 바람이 강한데 구름이 조금도 흐르지 않는다니.

 

[아키라]

(이 구름은, 언제쯤 걷히는 걸까.

자칫하면 정말 다들 놓칠 것 같아……)

 

불안해져서 몸이 굳어갔다.

그러자 네로가 눈치챘는지 내쪽을 돌아봤다.

 

[네로]

괜찮아? 넌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.

무서우면 무리하지 말고 말해.

감사합니다, 네로.

 

[미틸]

와악!?

 

갑자기 바람이 요란하게 불어닥쳐, 어디선가 날아온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휩쓸고 지나갔다.

 

[미틸]

형님……!

 

[루틸]

괜찮아.

자, 바람에 닿지 않게 내 뒤로 숨어……!

 

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강풍에 흔들리며, 모두 필사적으로 구름 안을 계속해서 날았다.

이윽고, 가까스로 지상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져있었다.

 

[클로에]

어라……

뭐야, 여기……!

 

[샤일록]

이건……

 

구름을 빠져나온 끝에 펼쳐진 것은 동화 속에서밖에 본 적 없는듯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.

한 면 가득 꽃밭. 그 중심에 흐르는 강은 반짝반짝 빛나며 꽃들과 아주 맑게 트인 하늘이 반사되어 진한 파란색으로 물들어있었다.

 

[미틸]

예쁘다……

 

[카인]

저 구름 뒤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……

 

[러스티카]

마치 구름 속의 낙원이네.

꿈을 꾸는 거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워.

 

하늘은 높고 푸른 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.

러스티카의 말대로 낙원 같았다.

 

[아키라]

(하지만 왜지……)

(이렇게 예쁜데, 가슴 깊은 곳이 조금 쓸쓸해지는 건)

 

[루틸]

……

 

[미틸]

왜 그러세요?

 

[루틸]

…… 여기 본 적 있을지도 몰라.


 

  1. 高:바다의 면이나 어떤 지점을 정하여 수직으로  일정한 지대의 높이. ≒해발 [본문으로]

댓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