빛이 사라진 후, 그곳에 소녀의 모습은 없었다.
대신 남아있던 것은, 깊은 색감의 낡은 나무껍질이었다.
[미틸]
헤, 헬레나 양은 대체 어디에……
설마 마법으로 사라져 버린 건가요?
[러스티카]
아니.
그녀는 여기에 없었어.
아마 변했던 그때부터……
[아버지]
그건…… 무슨……
[샤일록]
지금까지 저희가 보고 있던 건 헬레나가 아니라 정령인 페치였던 거겠죠.
[어머니]
페치……?
[샤일록]
조금 전까지 짐승처럼 날뛰었던 헬레나 말입니다.
정체는 신기한 힘으로 헬레나의 환영을 걸치고 있던 이 낡은 나무껍질이지만요.
[네로]
봐, 환영이 풀린 덕에 내 상처도 사라졌어.
아까 깨진 유리도 멀쩡하고.
[아키라]
(그래서 아프지 않았던 거구나……)
[샤일록]
드물게 정령이나 요정이 '페치'라고 불리는 이런 대역을 남기고 인간이나 마법사의 아이를 납치하는 일이 있습니다.
[스노우]
음. 아이를 자신의 곁에 두고 귀여워하거나 하인으로 부리거나, 이유는 다양하지만 말이네.
[아버지]
그럴 수가……!
그럼, 헬레나는 정령에게 납치당했다는 건가요!?
[어머니]
결국 그 아이는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다니……
아아, 이런 일이……
부모의 비통한 한탄에 모두가 괴로운 표정을 띠었다.
[루틸·미틸]
…………
말을 고르고 있을 때, 루틸이 헬레나의 부모님께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 손을 잡았다.
[루틸]
헬레나의 아버지, 어머니.
저희가 꼭 헬레나를 찾아올게요.
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.
[어머니]
마법사님……
[카인]
그래. 한시라도 빨리 찾아서 당신들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.
[미틸]
두 분은 헬레나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주세요.
혹시라도 배가 고플지도 모르니까요!
미틸과 카인이 헬레나의 부모님께 따뜻한 말을 건넸다.
스노우는 샤일록에게 받은 나무껍질을 들고 마을에서 보이는 유달리 높은 산을 가리켰다.
[스노우]
나무껍질이 남긴 마력의 흔적을 조사했네.
아마 정령은 저 산에 있을 게야.
헬레나도 같은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겠지.
[어머니]
정말인가요……!?
모두에게 눈짓하고, 고개를 끄덕였다.
헬레나의 부모는 조금 진정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.
[아버지]
감사합니다.
부디,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……!
[네로]
잡혀간 여자아이가 있을만한 곳은 이 근처인가.
그런데 구름이 굉장하네……
잠시 하늘을 날아, 스노우가 가리킨 산에 도착했다.
네로의 빗자루에 올라타 하늘에서 산을 내려다보니 산 꼭대기 부근에 두툼한 구름이 덮여있었다.
공기도 희미하게 느껴질 만큼 표고가 높고 인간이 가볍게 오를만한 장소로는 보이지 않았다. 1
[아키라]
여기서는 구름이 방해돼서 산꼭대기 상황이 보이지 않네요……
[카인]
그렇네. 마법으로 조금 잘 보이게 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……
[샤일록]
관두는 게 좋아요.
정령의 거처를 경솔하게 어지럽히면 위험한 일이 될지도 모르니까요.
경우에 따라선, 구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.
[러스티카]
그렇네.
적어도 떨어지지 않도록, 되도록 붙어서 날까.
빗속에서 같은 우산을 쓰고 우리만의 특별한 시간을 즐기는 것처럼.
[클로에]
정말. 자주 미아가 되는 러스티카가 제일 걱정이야.
내 옆에서 떨어지지 마.
[러스티카]
후후. 고마워, 클로에.
[미틸]
저기, 형님.
형님 옆을 날아도 될까요?
여기서 미아가 되는 건 무서워요……
[루틸]
물론이지!
같이 날까, 미틸.
누구도 떨어지지 않도록 가까이 붙었다.
나도 빗자루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네로의 옷을 붙잡았다.
[카인]
그럼 갈까.
카인과 샤일록이 선두에 서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고,
우리도 떨어지지 않도록 뒤를 따랐다.
[클로에]
와앗! 깜짝이야……
방금 그건 천둥인가?
바람도 강해서 기후가 불안정하네.
[러스티카]
그렇네. 그래도 신기하다.
이렇게 바람이 강한데 구름이 조금도 흐르지 않는다니.
[아키라]
(이 구름은, 언제쯤 걷히는 걸까.
자칫하면 정말 다들 놓칠 것 같아……)
불안해져서 몸이 굳어갔다.
그러자 네로가 눈치챘는지 내쪽을 돌아봤다.
[네로]
괜찮아? 넌 이런 거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까.
무서우면 무리하지 말고 말해.
감사합니다, 네로.
[미틸]
와악!?
갑자기 바람이 요란하게 불어닥쳐, 어디선가 날아온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휩쓸고 지나갔다.
[미틸]
형님……!
[루틸]
괜찮아.
자, 바람에 닿지 않게 내 뒤로 숨어……!
눈을 뜨지 못할 정도의 강풍에 흔들리며, 모두 필사적으로 구름 안을 계속해서 날았다.
이윽고, 가까스로 지상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져있었다.
[클로에]
어라……
뭐야, 여기……!
[샤일록]
이건……
구름을 빠져나온 끝에 펼쳐진 것은 동화 속에서밖에 본 적 없는듯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.
한 면 가득 꽃밭. 그 중심에 흐르는 강은 반짝반짝 빛나며 꽃들과 아주 맑게 트인 하늘이 반사되어 진한 파란색으로 물들어있었다.
[미틸]
예쁘다……
[카인]
저 구름 뒤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……
[러스티카]
마치 구름 속의 낙원이네.
꿈을 꾸는 거라고 착각할 정도로 아름다워.
하늘은 높고 푸른 꽃이 화려하게 피어있다.
러스티카의 말대로 낙원 같았다.
[아키라]
(하지만 왜지……)
(이렇게 예쁜데, 가슴 깊은 곳이 조금 쓸쓸해지는 건)
[루틸]
……
[미틸]
왜 그러세요?
[루틸]
나…… 여기 본 적 있을지도 몰라.
- 標高:바다의 면이나 어떤 지점을 정하여 수직으로 잰 일정한 지대의 높이. ≒해발 [본문으로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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