본문 바로가기
이벤트 스토리 20/애수어린 해바라기의 에튀드

애수어린 해바라기의 에튀드 2화

by camirin 2021. 4. 7.

[파우스트]
레녹스……
 
[레녹스]
파우스트 님.
 
[파우스트]
뭘 하고 있는 거야, 이런 곳에서……
 
[레녹스]
망을 보고 있었습니다.
이상은 없어 보였습니다.
별로 편히 쉬지 못하시는 것 같아서요.
며칠 망을 봐서 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면, 보고하려 했습니다.
 
[파우스트]
…………
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.
 
[레녹스]
쓸데없는 일을 해서 죄송합니다.
 
[파우스트]
……그런 뜻이 아니라……
…………
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.
……괜찮다면 방에서 차라도 한 잔 어때?
 
[레녹스]
감사합니다.
사양하지 않겠습니다.
 
[파우스트]
꿈은 정말 넘치지 않았나?
 
[레녹스]
네.
문제없었습니다.
역시 파우스트 님이십니다.
 
[파우스트]
아첨은 됐어.


[네로]
네네.
시노…… 무슨 일이야?
 
[시노]
입이 심심해서.
뭐 먹을 거 없어?
 
[네로]
하하…… 또냐고.
기다려봐. 뭐 만들어줄게.
 
[시노]
진짜? 아싸!


[시노]
아까 파우스트 방 앞에서 커다란 남쪽 마법사를 봤어.
아마 레녹스……
 
[네로]
아아. 옛날에 알던 사이라던 것 같아.
아는 사이랄지 종자랄지……
 
[시노]
히스와 나 같은 관계인가.
불침번을 서는 것 같았어.
나도 해보고 싶어.
자고 있는 히스의 방 앞에서 자지 않고 경호를 하는 거야.
분명 기분 좋겠지.
 
[네로]
기분 좋은가?
망보는 건 지루한 거야.
 
[시노]
자신의 충성심이 높다는 걸 느낄 수 있어.
히스도 분명 기뻐할 거야.
자기에겐 든든한 가신이 붙어있다고.
 
[네로]
그런 타입으론 안 보였는데……
자, 여기서 먹고 가.

[시노]
맛있어 보여.
잘 먹겠습니다.
 
[네로]
그래.
 
[시노]
숲지기를 했을 때는 밤중에 배가 고프면 나무 열매나 과일을 먹었었어.
이렇게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다니 마법사는 최고야.
 
[네로]
하하. 됐으니까 먹어.
 
[시노]
……맛있네, 이거.
히스에게도 주고 싶어.
히스는 먹어본 적 있을까?
 
[네로]
서민식이라 어떠려나.
 
[시노]
히스 몫도 만들어 줘.
내일 블랑솃으로 돌아간다는 것 같아.
주인님께 편지를 받았다나.
 
[네로]
그렇구나.
너도 같이 가?
 
[시노]
당연하지.
그 녀석이 있는 곳엔 나도 있어.
 
[네로]
하하……
넌 정말 히스클리프가 소중하구나.
 
[시노]
주군이니까.
 
[네로]
…………
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히스클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어.
그 녀석도 널 소중하게 여기고.
내가 보기엔 어리고 훈훈한 주종의 연이다만……
 
[시노]
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?
 
[네로]
…………
미래에 혹시……
같은 길을 걸어갈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할래?
 
[시노]
…………
 
[네로]
지금은 둘이 함께 있고, 둘이서 있다면 무적처럼 느껴질 거야.
불침번을 서고, 맛있는 걸 나눠 먹고, 그것만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지.
하지만 만약에……
언젠가 그렇지 않게 된다면?
 
[시노]
……그렇지 않다는 건?
 
[네로]
뭐라 해야 좋을까……
……아니다, 내가 이상한 소릴 했네.
됐어, 잊어……
 
[시노]
말해. 얼버무리지 마.
 
[네로]
…………
불침번은 위험이 미치니까 하는 거야.
히스클리프가 위험에 휩싸여있는 것을 넌 언제까지 기뻐할 수 있을까?
맛있는 건 고사하고 이번이 최후의 만찬 같은 식사를 몇 번이나 나눌 수 있어?
명예나 승리와 맞바꿔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모함을 반복하는 히스클리프를 견딜 수 있어?
 
[시노]
누구 얘기야?
히스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아.
 
[네로]
…………
그럼 됐지만……
 
[시노]
무모한 정도가 딱 좋아.
히스의 신변에 위험이 닥친다면 내가 지킬 뿐이야.
<거대한 재앙>으로부터도.
어떤 적으로부터도.
 
[네로]
………… 하하……
 
[시노]
……뭐가 웃긴데.
 
[네로]
열 번 정도까지는 그렇게 생각하겠지.
하지만 열한 번째쯤부터는 제정신이 아니게 돼.
스무 번째 뒤로는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죽여주겠다는 생각을 해.
 
[시노]
…………
서른 번째부터는?
 
[네로]
함께할 수는 없다고 깨달아.


[파우스트]
차로 주면 돼?
 
[레녹스]
제가 하겠습니다.
파우스트 님은 앉아계십시오.
 
[파우스트]
내 방이야.
 
[레녹스]
하게 해 주세요.
400년간, 꿈까지 꾸며 기다렸던 일입니다.
 
[파우스트]
…………
……조용히 사라져서 미안했다.
 
[레녹스]
아뇨, 제가 따라가지 못했던 것입니다.
 
[파우스트]
넌 잘못한 게 없어.
 
[레녹스]
아뇨.
그때 당신을 구출해서,
요양하며 숨어 지냈던 오두막집에서……
잠깐 동안이라도 마음 편히 지내셨다면
제 앞에서 조용히 모습을 감추시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.
계속 후회했습니다.
 
[파우스트]
…………
 
[레녹스]
드세요. 아직 뜨겁습니다.
 
[파우스트]
…………
……혼자 있고 싶었어.
어떡해서든.
 
[레녹스]
저는 혼자 계시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.
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……
하지만 그게 당신을 몰아붙였죠.
…………
저주상이라니……
 
[파우스트]
실망했겠지.
네가 찾아 헤매던 남자의 정체는 이런 거야.
 
[레녹스]
제 정체도 이렇습니다.
복수조차 하지 못했습니다.
당신을 찾는 것으로 고작이어서……
 
[파우스트]
넌 남을 원망하는 일에 어울리지 않으니까.
 
[레녹스]
……당신이야말로.
파우스트 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.
알레……
 
[파우스트]
그 이름은 꺼내지 마.
 
[레녹스]
…………
 
[파우스트]
……널 만나서 다행이야.
현자의 마법사가 되다니, 너에겐 또 운이 없는 일이지만.
 
[레녹스]
저는 운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.
 
[파우스트]
감사할 만한 운명이 아니야.
이전 전투에서 둘이나 돌이 되었어.
나는 정말로 지도자에 어울리지 않아.
 
[레녹스]
그렇지 않습니다.
동쪽의 젊은 마법사들도 현자님도 당신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어요.
 
[파우스트]
농담하는 게 아니야……
믿고 따라와 준 자들을 나락 끝으로 이끈 내가 뭘 할 수 있지?
내가 그 배신자와 인간들을 신용한 탓에 몇 명이 희생되었지?
말해봐, 레녹스.
 
[레녹스]
…………
 
[파우스트]
……히스는 동정심에 조언을 했어.
그저 그뿐이야.
선생 역할은 내 역할이 아니야.
 
[레녹스]
……저주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신의 역할입니까?
 
[파우스트]
그래.
네가 아는 나는 이제 없어.
망도 두 번 다시 보지 않아도 돼.
 
[레녹스]
…………
 
[파우스트]
……난 잊고 넌 네 인생을 소중히 여겨 줘.
너는 부디 행복해졌으면 해.
 
[레녹스]
저도 그렇습니다, 파우스트 님.
 
[파우스트]
……잘 자, 레노.
 
[레녹스]
또 오겠습니다.
 

댓글