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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벤트 스토리 20/애수어린 해바라기의 에튀드

애수어린 해바라기의 에튀드 1화

by camirin 2021. 4. 6.

[아키라]

이 세계에 와서 입을 옷도 많이 늘었네……

아…… 이 스툴……

 

 

나는 담황색으로 물든 부드러운 질감의 스툴을 집어 들었다.

담황색의 정체는 해바라기였다.

나는 어떤 해바라기 밭의 풍경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.

 

[아키라]

……그립네……

 

그건 동쪽 마법사들과 처음으로 훈련을 갔을 때였다……


토비카케리 사건이 정리되고, 모두가 마법사에서 살기 시작해서 꽤 지났지만……

동쪽 마법사의 선생님인 파우스트는 자신의 방에서 나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다.

 

[시노]

이봐, 파우스트.

우리에게 마법을 가르쳐라.

다른 녀석들은 이미 훈련을 시작했어.

 

[히스클리프]

시노, 하지 말라니까.

아직 주무실지도 모르고……

 

[시노]

벌써 해가 중천이야.

 

[히스클리프]

사는 곳이 바뀌어서 잘 잠들지 못하는 걸 수도 있어.

……요전에 뵈었을 때도 수면부족 같았고……

……선생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야.

선생님과 마법사에서 지낼 수 있게 돼서 난 기뻤지만……

선생님은 괴로우셨던 걸까……


[파우스트]

…………

 

[네로]

안녕, 선생.

점심시간은 끝나버렸어.

다들 진작에 어디로 갔다고.

 

[파우스트]

……네로.

 

[네로]

남이랑 만나지 않으려고 시간을 피한 건가.

 

[파우스트]

떠들썩한 건 좋아하지 않아.

아무것도 없다면 방으로 돌아가겠어.

며칠 정도는 먹지 않아도 괜찮……

 

[네로]

자, 가져가.

 

[파우스트]

……뭐야, 이 바구니.

피크닉이라도 하는 거야?

 

[네로]

빵이랑 치즈랑 찐 야채랑 키슈가 들었어.

와인은 덤.

 

[파우스트]

…………

낮부터……

 

[네로]

마시고 자.

요즘 못 자고 있잖아.

다크서클 엄청 심해.

아니면 잠들고 싶지 않은 건가?

 

[파우스트]

……왜?

 

[네로]

밤중에 포트 가득 커피를 타갔으니까.

 

[파우스트]

잘도 봤네……

 

[네로]

옛날에 동료의 영양관리가 일이었어.

그러니까 버릇이 들었지.

몸과 마음은 입에 들어가는 걸로 만들어지니까.

 

[파우스트]

의외군.

 

[네로]

영양관리가?

 

[파우스트]

동료 쪽이.

대인관계는 서툴다고 했으니까.

 

[네로]

……아주 먼 옛날이야기야.

있잖아, 선생.

시노랑 히스가 네 수업을 기다리는 것 같더라.

 

[파우스트]

선생이라고 부르지 마.

네 쪽이 더 오래 살았잖아.

추측이지만……

 

[네로]

알았어, 파우스트.

하지만 가끔은 부르게 해 줘.

나는 선생한테 배운 적이 없거든.

 

[파우스트]

요리랑 마법은?

스승 아래서 배우지 않았나?

 

[네로]

네가 처음이야.

넌? 마법 스승은……

 

[파우스트]

없어.

 

[네로]

아, 그래.

그럼 독학의 고생도 알겠지.

가르쳐 줘, 아이들한테.

 

[파우스트]

……나는 지도자에 어울리지 않아.

네가 지도해줘.

 

[네로]

나? 나야말로 안 어울리지.

 

[파우스트]

왜지?

 

[네로]

친절하지 않으니까.

 

[파우스트]

나도 친절하지 않아.

점심도 같이 먹지 않는 히키코모리지.

이건 받아갈게. 고마워.

 

[네로]

그래.

내키면 같이 먹어.

 

[파우스트]

…………

네로.

한밤중에 내 방에 온 적 있나?

 

[네로]

아니…… 없는데.

 

[파우스트]

그럼 됐어.

평생 오지 말아 줘.

 

[네로]

뭐야 그게……

망령이랑 춤이라도 추는 거야?

 

[파우스트]

비슷해.


<거대한 재앙>이 파우스트에게 입힌 기묘한 상처는 꿈이 넘쳐흐르는 것이었다.

나는 흘러나온 꿈을 보고, 저주상인 파우스트가 과거에 구국(救國)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았다.

그는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.

꿈이 넘쳐흐르는 것이 두려워서 잠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.

 

[아키라]

꿈이 흘러나가지 않도록 결계를 치고 주무신다고 했는데,

역시 걱정되는 거겠죠……

 

[레녹스]

……그렇네요.

 

남쪽의 마법사 레녹스는 예전에 파우스트의 종자였던 사람이다.

온후하고 견실한 인품으로, 주위의 신뢰도 두텁다.

 

[레녹스]

이대로라면 몸이 망가질 겁니다……

제 쪽에서도 파우스트 님께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.

 

[아키라]

네. 부탁드려요.

……동쪽 나라의 선생님 역을 맡은 것도 부담이 됐을까요.

히스가 좋은 선생님이라고 했었고, 파우스트도 천성이 상냥한 사람이니까 무심코 부탁해버렸지만요.

 

상냥한 사람이라고 말하자, 레녹스는 기쁜 듯 미소 지었다.

 

[레녹스]

어린 마법사들의 교육에 파우스트 님은 적임이라고 생각합니다.

지도자로서 뛰어난 분이시니까요.

……그리고, 지금의 파우스트 님께는 무언가 역할이 있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.

 

[아키라]

역할……

현자의 마법사 역할과 동쪽 마법사의 선생님으로서의 역할 말인가요?

 

[레녹스]

네.

 

나는 곧바로 찬성할 수 없었다.

괴로운 경험을 한 사람에게 역할을 부여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으니까.

전에 오즈에게 들은 적이 있다.

역할에 짓눌리지 말라고.

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, 레녹스는 온화하게 속삭였다.

 

[레녹스]

괜찮습니다, 현자님.

저도 그분의 불행은 바라지 않아요.

당분간 맡겨주시겠습니까?


[파우스트]

……으음……

(짧은 꿈을 꿨어……

결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 같은데……

……잠들어있는 동안은 무사할지……)

(매개를 쓰고 있으니 안전할 거라 생각하고 싶지만……)

…………

방 밖에 누가 있는 것 같은데……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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