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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벤트 스토리 24/서릿날을 품은 짐승과 질풍의 카우리스

서릿날을 품은 짐승과 질풍의 카우리스 - 에필로그

by camirin 2024. 6. 23.

마법사는 고대의 마수와 협력해서 탑을 끝까지 오르면 힘을 얻을 수 있다.

우리는 탑에서 만난 고대의 마수, 아라켈과 함께 여러 시련을 거쳐 드디어 최상층에 도달했다.

홀의 중앙에는 제단이 있고, 움푹 파인 곳에는 아라켈의 이마에 있는 보석 같은 구슬과 닮은 돌이 박혀있었다.

 

[피가로]

저게 '마수의 씨앗'이 틀림없어 보이네.

 

[아라켈]

뀨!

 

아라켈이 갑자기 지면을 강차게 찼다.

바람 같은 몸놀림으로 시노의 어깨에 착지했다고 생각한 순간──.

눈을 감고 시노의 이마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.

 

[시노]

………!

너…….

 

시노가 훗 하고 숨을 내쉬었다.

부드러운 눈빛으로 아라켈을 바라보며 똑같이 눈을 감는다.

시노의 이마와 아라켈의 이마가 톡 닿는다.

부드럽게, 그러나 강하게.

 

[피가로·클로에·네로·아키라]

………….

 

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광경에 모두가 말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.

감겨있던 눈을 뜨고,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떨어졌다.

 

[시노]

자, 가라.

 

시노가 아라켈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.

아라켈은 친구의 전별을 받아들이는 듯 그 손에 몸을 맡긴다.

시노의 눈동자가 양초의 불꽃처럼 흔들렸다.

그 순간, 아라켈은 시노의 어깨에서 뛰어내려 일직선으로 제단을 향해 달려갔다.

그리고 박혀있는 마수의 씨앗의 정면에 서고는 시노를 쳐다보았다.

 

[시노]

이걸로 이별이군.

 

[아키라]

(역시, 지금까지의 마수들과 같아……)

 

탑을 돌파하면 마수의 씨앗은 원래 형태로 돌아가고 고대의 마수는 다시 잠에 든다.

쓸쓸하지만 지금까지의 마수들은 다들 그것을 바라왔다.

지금 시노를 바라보고 있는 아라켈 또한 그 소망을 그에게 전했을 것이다.

 

[시노]

아라켈.

한 가지 말해두지.

처음 널 만났을 때…… 솔직히 놀랐어.

커다랗고 강한,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마수를 상상했으니까.

하지만 너와 여기까지 싸워오고 이제야 알았어.

네 진가라는 걸 말이야.

네 가치는 내가 가장 잘 알아.

넌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.

최고의 마수다.

만나서 즐거웠어.

 

[네로]

아라켈. 넌 정말 시노와 닮았어.

적에게 달려드는 느낌이라던가, 조마조마한데 의지도 되고 말이야.

그리고 좋아하는 음식을 볼 가득 밀어 넣고 먹는 얼굴이 천지난만한 점도.

다음에 만날 때까지 네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해 둘게.

그때까지 느긋하게 자고 있어.

 

[클로에]

아라켈. 내 머리를 쓰다듬어줘서 고마워.

정말 기뻤어!

네 손의 온기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.

이별은 슬프지만…….

분명 영원히 헤어지는 건 아닐 테니까.

그러니까…… 건강해, 아라켈!

 

[피가로]

아라켈. 넌 내가 마법을 쓸 때 흥미롭게 봤었지.

모른 체하고 있었지만, 평소보다 가까이 다가와서 말이야.

다음엔 사양 말고 좀 더 가까이 와.

피가로 선생님이 엄청난 마법을 보여줄게.

 

[아키라]

아라켈. 당신과 시노의 팀워크는 점점 연마돼서…… 마지막엔 호흡 소리까지 딱 맞는 것 같았어요.

둘이서 나란히 선 뒷모습은 정말 커다랗게 보여서, 흔들림 없는 안도감을 주었어요. 

고마웠어요,  아라켈!

 

아라켈이 새된 목소리로 울었다.

말은 모르지만, 보석 같은 눈동자가 나를, 네로를, 클로에를, 피가로를.

……마지막으로 시노를 보았다.

 

[시노]

또 보자.

맛차 스디퍼스》


마수의 씨앗을 회수하고, 며칠이 흘렀다.

회수한 마수의 씨앗은 스노우와 화이트가 관리해주고 있다.

재앙의 영향을 받은 탓인가 씨앗에서는 마력의 기운이 거의 사라졌고 보석 같은 반짝임도 잃어버렸지만…….

──지금 이 씨앗을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은 모르지만, 마법사의 인생은 길다.

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쌍둥이는 웃으며 이야기했다.


그날, 나는 시노와 함께 마법사 근처의 숲에 와있었다.

 

[아키라]

어라. 이 길 얼마 전까지 풀이 무성하지 않았나요?

굉장히 깔끔해졌네요.

 

[시노]

눈썰미가 좋군, 현자.

내가 다듬어놨어.

 

[아키라]

오오. 역시 시노!

고마워요, 걷기 정말 편해졌어요!

그리고…… 아!

저쪽 나무에 걸려있는 새집, 얼마 전에 왔을 때보다 늘지 않았어요?

 

[시노]

아아, 새끼들이 성장해서 좁아졌길래.

언제든 이주할 수 있도록 좀 더 큰 새집을 만들어놨어.

 

[아키라]

대단하다, 빈틈이 없어……!

저희만이 아니라 동물들한테도 살기 좋은 장소를 만들어주고 있군요.

 

[시노]

후후, 뭐 그렇지.

 

시노가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.

그 눈동자는 태양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서…….

그의 기쁜듯한 얼굴을 바라보며, 나는 숲에 오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았다.


[시노]

지난번의 답례?

 

[아키라]

네. 탑에서의 임무에서는 시노가 마수와 마음을 맞춰준 덕분에 마수의 씨앗을 회수할 수 있었어요.

그래서 뭔가 답례가 하고 싶어서요.

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말해주세요!

 

[시노]

……….

 

[아키라]

아. 물론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 괜찮아요. 천천히 생각해 보고 생각났을 때 알려주시면…….

 

[시노]

아니, 이미 정했어.

널 데리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. 내일 시간 비어있어?

 

[아키라]

네. 임무도 예정도 없어서 괜찮아요!

 

[시노]

정해졌네.

거기 갈 때까지 네가 '어떤 일'을 해줘야겠어.


[아키라]

(받고 싶은 답례라는 게 설마……)

('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잔뜩 칭찬해'라니 시노답네.

그런 거 부탁받지 않아도 해주고 싶을 정도인데)

 

주변을 둘러보니 걷기 좋게 정돈된 풀과 나무가 산들산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.

임무나 수업으로 바빴을 텐데 혼자 여기에 와서 풀과 나무를 정리하는 시노의 모습이 떠오른다.

 

[아키라]

(새삼스레 감사의 마음을 전할 좋은 기회를 받아버렸네)

……그러고 보니 시노가 숲의 정비를 시작한 건 미틸과 리케의 영향이었죠.

둘이 가끔 놀러 오니까 다치지 말라고.

 

[시노]

맞아. 여긴 셔우드 숲에 비하면 별일은 없지만.

결계가 쳐져있으니 위험한 생물도 별로 없어.

하지만, 여기엔 여기의 정돈법이라는 게 있어.

 

시노가 고개를 들고 숲을 천천히 돌아보았다.

 

[시노]

……재밌지.

 

눈을 깜빡인 그의 눈동자에 나무들의 초록이, 땅의 갈색이, 하늘의 파랑이 비치고 있었다.

'숲'이라는 말 하나로 표현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.

하지만──.

거기서 살아가는 풀과 나무, 꽃, 동물.

수많은 숨결에 귀를 기울여, 그는 이 숲을 알아가려 하고 있었다.

굉장히 그답다고 생각했다.

사람을 싫어하지만 누구보다 상대를 관찰하는 동쪽 마법사다움이.

 

[아키라]

고마워요, 시노.

이 숲에 대해 많이 알아가려 해 줘서.

소중히 여겨줘서요.

 

[시노]

흐흥, 이쯤이야.

……아, 이 수풀.

현자, 곧 널 안내하고 싶었던 곳에 도착할 거야.

거긴 아직 아무한테도 알려준 적 없어.

네가 처음이야.

 

[아키라]

어, 그런가요?

 

[시노]

그래. 그러니까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로 해 둬.

 

[아키라]

알겠어요.

(아무한테도 알려준 적 없다니, 비밀기지 같은 곳인 걸까?)

 

약간의 두근거림을 안고, 수풀을 향해 걸어가는 시노의 뒤를 따라간다.


[시노]

좋아, 도착했어.

 

[아키라]

와아……!

 

시노와 함께 수풀을 빠져나가자, 그곳에 있던 건 반질반질하게 붉은빛으로 빛나는 루비 같은──.

 

[아키라]

예쁜 산딸기가 잔뜩!

이런 곳이 있었군요!

 

[시노]

숲을 정비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.

자, 현자. 먹어봐.

 

[아키라]

와아, 감사합니다.

음…… 달고 맛있어요!

 

[시노]

그렇지. 제대로 키우면 좀 더 수가 늘어날 거야.

그럼 리케랑 다른 애들한테도 알려주려고.

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걸 보여주고서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하니까.

 

[아키라]

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텐 비밀이라고…….

그런데 제가 먹어도 되는 거였나요?

 

[시노]

그래, 너라면 문제없어.

리케나 미틸이랑은 다르게 어린이가 아니니까.

한 개로 참을 수 있지?

 

[아키라]

웃…… 조금 전 산딸기, 진짜 진짜 맛있었어서 유혹이 굉장한데…….

물론, 참을 수 있어요!

 

[시노]

하하, 귀여운 녀석.

데려오길 잘했어.

……언젠가 여기를 산딸기로 가득 채우면 그 녀석도 데려올 생각이야.

 

[아키라]

그 녀석이라면…….

 

[시노]

아라켈인 게 당연하잖아.

 

[아키라]

……!

 

시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.

아라켈과 헤어지고 시노가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건 오늘이 처음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.

 

[시노]

그때, 현자는 자고 있어서 몰랐겠지만…….

건과일을 먹는 아라켈의 표정, 보여주고 싶었어.

 

[아키라]

어떤 표정이었나요?

 

[시노]

이렇게 맛있는 게 있다니, 같은 표정이었어.

 

그렇게 말하며 시노는 산딸기를 따 입에 던져 넣었다.

 

[시노]

맛있어.

 

행복한 듯 웃으며 산딸기의 맛을 음미하듯 씹었다.

 

[시노]

……그 녀석은 나랑 똑같아서 먹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타입이잖아.

적과 싸워서, 살아 돌아갈 수 있다면 돼.

하지만…….

말린 과일 하나로 그런 표정을 했던 녀석이니까.

생 산딸기를 먹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고 싶어.

 

미소 짓는 그의 옆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어, 나는 자연스레 웃음을 흘렸다.

평소에 식사를 맛있게 볼 가득 밀어 넣는 시노를 마법사들이 지켜보는 웃음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.

 

[아키라]

……저도 보고 싶어요.

아라켈이 어떤 얼굴로 이곳의 산딸기를 먹는지요.

그날이 기다려지네요.

 

[시노]

그래.

하지만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게 있어.

 

[아키라]

신경 쓰이는 것이요?

 

[시노]

만약 그 녀석이 산딸기가 너무 맛있어서 여길 떠나지 않으려 하면 어떡하지?

 

[아키라]

네!?

으음, 일단은 스노우와 화이트에게 상담해서…… 같이 산다던가?

 

[시노]

하하, 그거 좋네.

고대의 마수가 사는 마법사(魔法舎)의 숲.

평이 좋아지겠어.

그렇게 되면 아라켈이 살 수 있을 만한 오두막을 만들어야겠네.

 

[아키라]

그렇네요……!

아라켈은 팔과 꼬리에도 칼날이 있으니까 어떤 집을 지어줘야 할지 고민되네요.

 

[시노]

그럼 재료는 나무보다 돌로 하는 게 어때.

날이 닿아도 무너지기 어려워.

아니, 그럼 반대로 날이 상하기 쉬운가.

그렇다면──.

 

즐거운 듯 언젠가의 미래를 그리는 시노의 목소리는 정말 기분 좋아 보였다.

산딸기의 새콤한 향과 초록 내음에 둘러싸여서, 나는 그의 목소리에 계속 귀를 기울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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